여행의 이유
여행의 이유 | 김영하 | 문학동네 | 2019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p.51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p.81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p.148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p.165
인간은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과 대면한다. 어린아이들이 고아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은 부모를 잃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p.197
여행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집중시킨다. 우리는 한 도시의 핵심으로 돌진한다. 변두리의 단조로운 주택가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현지인들이 겪는 자잘하고 어지러운 일상을 잠깐 맛볼 수는 있지만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여행자는 도시의 정수만을 원한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살핀다. 현지인들은 심드렁하게 지나치는 건물과 거리에도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어댄다. 여행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들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p.204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노터리어스 RBG
노터리어스 RBG
2019.05.27 -
문맹
문맹
2019.05.22 -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2019.05.22 -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201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