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사랑
항구의 사랑 | 김세희 | 민음사 | 2019
'똑소리 난다.' 나는 힐러리가 이 말에 맞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위의 어른들은 똑똑한 여자나 어린아이를 가리켜 그렇게 표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게도 이 표현은 성인 남자에게는 쓰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칭찬하는 듯한, 즉 더 우월한 사람이 상대를 치하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었다. p.19
학교마다 동성애를 단속하는 대대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차마 그 단어를 쓸 수는 없었다. 그 단어를 쓰는 순간 그것의 존재를, 그것이 우리 집단 안에 정말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어서였을까? 아니면 단지 그 단어 자체에 강렬한 거부감을 느껴서였을까? p.26~27
'착각'이라는 단어처럼 한 사람을 우스꽝스럽고 비참하게 만드는 말이 있을까. p.127
우리가 사랑하는 오빠가 진짜 그 오빠가 맞을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지. 우리가 보는 모습은 대중을 상대로 만들어진 거니까. 화려하고 매끈매끈한 표면이니까. 그 이면에 어떤 성격이 감춰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 p.135
매사에 거리를 두고 유머러스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세련된 태도였다. 가볍게,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라는 듯이. 누군가를 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더라고. 뭐,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야. p.152
그래도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리면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분명 존재했으나 오래전 까마득히 깊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대륙에 관해 생각해 볼 때처럼. 6년간 본 것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었다. 그 엄청났던, 소녀들의 사랑하려는 욕구. p.153
-
너무나도 닮아 있는 여중, 여고생 시절의 모습에 소설 읽으며 추억 여행하는 기분. 떠오르는 얼굴들이 참 많았다.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벌새
벌새
2019.09.30 -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2019.09.23 -
책갈피의 기분
책갈피의 기분
2019.09.23 -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2019.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