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 조정진 | 후마니타스 | 2020
그들은 걸핏하면 나한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산재를 입은 직원을 치료해 주는 것은 그들이 알아야 하는 세상 물정이었다. 그들은 세상 물정이라는 말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 버렸다. p.45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p.122
용역 회사는 재계약 때마다 잘못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른바 '본보기'로 꼭 한두 명을 자른다. 그래야 다른 경비원들이 정신 차리고 일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그들은 이것을 "본때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 p.191
젊은이들이 견뎌 내지 못하는 일과 기피하는 일은 고령자의 차지가 된다. 젊은이가 못 견디는 일을 노인들은 견뎌 내기 때문이다. 견딜 만해서가 아니다.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p.250
나도 젊을 때 같으면 이런 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지금은 견뎌 낸다. 육체적 고단함도, 정신적 학대도 나이를 먹으니 견딜 수 있게 됐다. 나이에는 그런 힘이 있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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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워 일명 '고다자'로 불리는 아파트 경비원 노동자 이야기. 제목으로 쓰인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시사인>에서 추천글 보고 읽었던 책. 읽다 보면 암담한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꼭 읽어야 하고, 더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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